"정말로 본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여깁니까?"

아, 익숙한 목소리다. 앳된 구석이 있으나 냉정한, 그리하여 듣고 있으면 차분히 생각이 정리되고 머릿속이 맑아지는...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보고 싶지 않았는데. 평정을 가장하며 천천히 뒤돌자, 보랏빛 머리의 소년이 가볍게 목례해온다. 답지 않게 이런 외진 곳까지 나선 것도, 피르안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도 궁금한데... 집중할 수 없다. 머릿속이 그날처럼 어지럽다.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온다. 시선을 그의 가슴께, 정확히는 그의 손끝이 맴도는 자리에서 뗄 수 없다. 뒤죽박죽 무너지는 시야가 또 다른 풍경으로 덧칠된다... 연극의 배경 무대를 바꾸듯, 너무나도 그리운 장소가 펼쳐진다.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아벨린 님? 지난번 사건도 그 사람이 앞장서서 해결했다고 해요!'

'흐음...좀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저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곤란하네요.'

잊혀질 때도 된 대사들이 한 글자도 다른 것 없이 귓가에 꽂혀든다. 사람의 마음을 헤집기에 앞서 이 환영을 진짜처럼 받아들이게 만든다. 하지만 알터, 대체 누구를 동경하고 있는 거야? 나를 잊고, 대신 그 빈 곳에 들어간 건 대체 누구야? 기억 속에서 절제해 낸 조각들을, 무자비하게 늘어놓고 전시한다. 뒤이어 조각의 모서리로 찌를 준비를 한다.

'아벨린 님, 최근...새로 들어온 견습 기사가 있는 걸까요?'

'침입자인 건가요, 아벨린 님?'